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밸리 다시 읽기 16

안데스의꿈 2016. 2. 2. 10:44

<마키아벨리의 로마 : 시민적 자유와 끝없는 팽창.>



마키아벨리에게 "가능한 최선의 정체"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소란스러운 정체"로 낙인이 찍힌 로마 공화정이다.

그는 <강론> 1권에서 비교적 상세하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첫쩨, 그는 로마 공화정이 스파르타와는 달리 리쿠르고스와 같은 탁월한 인물을 통해 일시에 확립한 체제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그의 해석을 따르자면 로마는 "우연"(caso)을 통해 "혼합정체"를구축하게 되었다.이때 우연이라는 말은 폴리비우스같은 역사가가 로마 공화정의 성장 과정을설명할 때 사용했던 "자연에 의해"(Kata physis)라는 말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는 철인 왕이 없더라도 "가능한 최선의정체"에 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내포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공화정이 호민관제도를 창설함으로서 "혼합정체"에 도달하기까지의 변화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내재된 것이다. 포르투나(for tuna)와 같은 초인간적 원인들이 행위의 조건과 결과를 제약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에게로마 공화정은 최소한 인간의 의지로 순환과정을 바꾸거나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던 것이다.


<로마와 상반되는 피렌체의 무질서는 "노예적 삶"이 원인>


둘쩨, 마키아벨리가 "우연"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우연한 사건"(accidente)이라는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귀족과 인민의 "갈등"이 로마 공화정을 "혼합정체"로 이끌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우연한 사건"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거나 제도 내로 편입될 수 있는 갈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로마 시민들이 도시를 방어길 거부하며 집단적으로 불만을 표했던 "철시(撤市)"(secessio)로부터, 현대적 의미의 혁명처럼 폭력을 수반하거나 제도 밖에서 벌어지는 폭동까지 모두 포괄한다.

비록 그는 <피렌체사> 3권 1장에서 로마 공화정의 민중은 귀족들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가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강론> 1권 37장에서 보듯, 그는 로마 공화정에서 벌어진 귀족과 인민의 갈등이 로마 공화정의 안정성을 어떻게 위협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론> 2권 2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로마 공화정의 모든 좋은 것들은 "자유로운 삶"(vivere libero)에서 나왔고, 지금 피렌체의 무질서는 "노예적 삶"(vivere servo)에서 비롯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덛붙인다. 시민적 자유로부터 사익과 공익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마키아벨리는 "시민적 자유"를 로마 공화정이 "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동력으로 보고 있다.

그는 "소규모 자치도시"로는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는 <군주> 3장에서 영토를 "획득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분명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피렌체사> 3권 1장에서와 같이 정치사회적 갈등이 "군사적 덕성"을 고취시키는 방식으로 종결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실 <강론>2권에 묘사된 제국으로서 로마 공화정은 주변지역을 다스리는 방식에서 "참주"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귀치아르디니조차 "팽창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며 그의 견해에 반발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에게 자유가 보장되면 전쟁 수행에 가장 중요한 "인력"과 "돈"이 준비되고, 시민들이 스스로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을 체득하면 독립 뿐만 아니라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힘도 얻게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아마도 마키아벨리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비지배 자유"나 "갈등을 통한 공존"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22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시리즈 5회 끝 부분이며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