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17

안데스의꿈 2016. 2. 3. 10:09

<안내글> 이 시리즈는 원래 10회로 예정됬다가 8회로 끝나면서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1>에 수록된 "글 싣는 순서"가 달라졌기에 <예정 순서>와 <실제 순서>를 함께 올립니다.


        <예정 순서>                                                                                                            <실제 순서>

I 마키아벨리와 우리

    1. 이방인 마키아벨리.

    2.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u)

II 자유와 갈등의 미학.

    3. "다수"와 "소수"

    4. "참주"와 "군주"

    5. "로마"냐 "베네치아"냐.

III. 민주적 리더십.                                                                                                 III. 민주적 리더십.

    6. 보르지아 테제.                                                                                                  6. 체사레 보르지아.

    7. 사보나롤라 테제                                                                                                7.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8. 파쿠비우스 테제.

IV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IV.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9. 비지배 자유.                                                                                                     8. 마키아벨리와 비지배.

   10.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



6. 체사레 보르지아.


체사레 보르지아(Cesare Borgia. 1475-1507)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인물이다. 교황 알렉산더 6세의 큰아들로 이탈리아 중부 로마냐를 모두 장악했고, 그 기세를 몰아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까지 지배하려 했던 마키아벨리 시대의 가장 주목받던 군주다.

발렌티노 공작, 로마 교회군 총사령관, 그리고 추기경이라는 화려한 경력에서 보듯 그는 당시 누구도 꿈꾸지 못한 많은 것을 한꺼번에 갖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실질적인 힘을 가진 권력자이기도 했다. 한 손에는 냉혹하리만큼 교활했던 교황 알렉산더 6세의 후원, 다른 손에는 그 누구보다 기민하고 잔인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용병대장들이 그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체사레가 "새로운 군주"(principe nuove)의 전형으로 제시된 <군주> 7장은 수많은 논쟁거리를 담고 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군주"에 대한 이야기가 천박한 용병대장 정도의 생존방식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에서 마키아벨리가 묘사한 "새로운 군주"의 잔인함과 기만술이 그가 꿈꾸던 "자유로운 삶"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군주>에서 "새로운 군주"의 전형으로 소개된 인물들은 우리에게 큰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보다 더한 잔인함과 천박함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악당들을 제거하겠냐는 질문이 떠나지 않고, 그런 방식으로 "자유로운 삶"을 건설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 "타고난 운"과 "타인의 무력" : 철인정치 콤플렉스 벗기>


엄밀하게 보면 마키아벨리는 <군주> 7장에서 체사레에 대해 두가지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한편(으로는:옮긴이 생각) 체사레는 "새로운 군주의 전형"으로 모두가 모방해야 할 대상이다. 무려 세차례에 걸쳐 마키아벨리는 그를 "새로운 군주의"의 모범이라고 말한다. 그의 행적보다 더 나은 새로운 군주의 수칙을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행동에서 비판할 것을 찾지 못했다는 과분한 칭찬을 더하고, 마지막으로는 새로 권력을 잡은 군주라면 누구나 그로부터 배워야 한다고까지 부언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마키아벨리로부터, 체사레가 실패한 군주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비록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측하지 못한 불운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 하려는 것 같지만, 마키아벨리는 체사레를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선출되도록 허용함으로써 자기의 몰락을 자초한 실패한 군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될 사실이 있다. 체사레가 아버지 교황 알렉산더 6세의 후원과 프랑스의 군대를 통해 이탈리아의 맹주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군주"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자기의 능력으로 권력을 잡은 인물로 대표된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더라도, 최소한 시라쿠사의 히에론(Hieron)처럼 자기의 힘으로 일어선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때 체사레는 우리의 일반적 기대에 훨씬 못미친다. 그가 최초로 이탈리아의 권력판도에 뛰어들게 된 것도 알렉산더 6세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고, 그가 중부 이탈리아를 장악하게 된 것도 프랑스 군대의 원조가 없었다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따져보면 알렉산더 6세가 오히려 더 위대해 보인다. 왜냐하면 "기만"과 "외세"만으로 아들을 이탈리아의 맹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타인의 도움"으로 권력을 장악한 체사레로부터 무엇을 부각시키고 싶었을까? "다른사람의 무력과 운"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자기의 역량으로 군주로서의 권위를 성공적으로 확립했다는 평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대답으로는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능력의 소유자를 기다리는 헛된 열망으로부터 자기의 시대를 해방시키려던 마키아벨리의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톤 이후 지속되어온 "철인 왕"에 대한 논의로부터, 그리고 "신을 닮아가기"(homoiosis theoi)를 정치가의 목표로 앞세운 지식인들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체사레의 "타고난 운"도 실제로는 교황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아버지의 "기만"이 가져다준 선물이었을 뿐이라는 설명 속에, "외세"도 잘만 이용하면 자기의 역량이 될 수 있다는 역설 속에, 마키아벨리는 철인왕의 콤플렛스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군주"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29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시리즈 6회의 도입부로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