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논리적 단상

인문학과 책

안데스의꿈 2016. 2. 25. 13:33

어릴때 책을 좋아했다. 아니,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중인 상태에서 중병(늑막염은 당시 중병에 속했음)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의사는 당연히 중절를 권했지만 어머니의 고집으로 내가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덕분에 병세가 악화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기나긴 투병에 들어가셨다.

나는 병원에서 태어나 바로 집으로 옮겨져서 동네 아주머니와 처녀들의 손에 영아기를 넘겼다.

내가 어머니 품에 안긴 건 태어난지 30개월쯤 지나서였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만 했다, 여럿이 노는 것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알았다.

입학 당시 담임선생님은 여선생님이었다.(성함은 지금도 기억한다) 쉬는시간에 친구들이 노는 걸 구경만 하는 나에게 가끔 뭔가를 (연필 한자루,사탕 하나 등)주며 혼자 구경하지 말고 같이 어울리라고 하시곤 했다. 산수를 잘 해서(저학년때는 별로 틀린 적이 없다)내게 관심이 좀 있으셨던 모양인데 당시는 같이 어울리라는 그 말때문에 부담스러웠다. 모르는 애들과 어울리는 건 당시 나에게 두려운 일이었다.그 두려움에서 벗어난 건 고학년이 되고 나서다.

그렇다 보니 접하게 된 건 책과 바둑이었다. 그것 밖에 할 게 없었다. 다행히 "자폐증"이나 다른 이상증상은 없고 그때의 기억은 "상처"가 아닌 "추억"으로남아있다.(그때의 친구들은 지금 모임에서 종종 만난다.) 아마도 책 덕분이었을 것이다. 당시 책은 나에게 다른 친구들과 만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인문학은 사람의 삶(혹은 사회)과 생각(사상)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 연구의 방법은 관찰, 분석, 판단, 종합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 과정을 통틀어 <사유>라고 하면 될 것이다.

1. 인문학은 인간(사회)에 대한 사유의 산물이다.

2. 인문학 서적은 사유의 산물이다.

위 1,2는 원래 같은 말이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인문학 서적은 <특정 시점(그 시점에서의 과거 포함)에서 특정한 사회(인간)의 특정한 현상에 대한 특정인의 사유의 결과물>로 정의할 수 있으므로 1,2는 당연히 같은 말이어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나에게는 책을 읽는 것과 술잔을 기울이며 진지하개 대화 혹은 토론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나는 이것이 인문학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인문학자들이 연구실에서 방대한 서적을 읽고 논문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스스로 접하고, 관찰하고, 대화하고, 성찰,사유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믿는다.먼 옛날의 인문학은 틀림 없이 그러했을 거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문학은 뭔가 이상하다. 책을 위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책이 아니라 인간이 우선이다. 인간이 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인간애게 참고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원래 인문학은 현실과 별개일 수 없다.

인문학책은 위 <인문학서적의 정의>처럼, 현실을 관찰, 분석, 판단, 종합하는 사유과정의 참고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인문학자들 중에는 거꾸로 인문학의 진리는 책 속에 있다고 믿으며 책과 다른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비판은 나쁜 일이 아니긴 하다), 그런 <증상>은 그들이 자신이 공부한 <책 속의 인문학>에 사로잡힌 사고범위가 하나의 세계관으로 자리잡는 현상으로 현실에 대한 <투명한 사유>능력을 제한하게 한 탓이라고 믿어진다. 한가지만 예를 들겠다.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의 저작을 번역한 분(실명은 밝히지 않겠으며 비밀 글로 물어오시면 답하겠습니다)은 책머리의 소개 글에서 스키너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견해에 대하여 다음처럼 이의를 제기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군주론이 아니라 "군주정에 대하여"임. 옮긴이 주)에서 내놓고 있는 수많은 충격적 발언들은 당대와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악의 교설로 이해되어 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충격을 나름대로 소화하고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구실로 많은 악행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특히 근대의 개막 이래 정치권력 행사의 잔혹성이 규모와 정도에서 엄청나게 증가한 데에 마키아벨리즘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위 견강부회적 글에 대하여 뭐라 일일이 말할 생각은 없고 몇가지 생각만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1. 로마 후기, 수많은 황제가 권모술수에 따른 잔인한 유혈정변으로 교체되었다.

2. 유럽의 종교전쟁시(약 백여년간) 유럽에서는 대량살상이 자행되었고 그 규모는 수천만에 이른다. 또한 "마녀사냥"같은 미친 살상도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다.

   이것은 <신이라는 절대이데올로기>에 의한 "광신적 허위의식"의 결과이지 마키아벨리즘(사실 마키아벨리즘과 마키아벨리는 관계도 없다.그냥 그의 이름이 붙여졌을 뿐)과는 관계가 없다.

3. 그 이후의 대량살상은 근대 절대왕정의 출현과 깊은 관계가 있다.(마키아벨리의 "군주정"과 절대왕정도 실은 다른 개념이다)

4. 삼국지에는 온갓 권모술수와 대량살륙으로 시종하는데, 2천년 전의 시대이다.

5.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개념은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며(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것이 당연한 시대에 마키아벨리는 그것을 넘어 현 시대에도 적용될 <비지배 자유,혹은 시민적 자유>를 주창하였다.(탈 이데올로기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P.S 지금 필리버스터가 진행중이다. 현재의 우리사회는 520여년 전 "사보나롤라 치하의 피렌체"와 거의 같다.(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 이 시대의 피렌체가 가장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언론과 이른바 "지식인"들로부터 그렇게 멸시받는 야당 의원들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적어도 "시민"은 절실하고 진심이 깃든 몸부림에 대하여 감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박정권의 폭주를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후진의 가속"까지는 생각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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