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야기

<바른 건설 바른 삶>

안데스의꿈 2016. 10. 20. 11:18

본사 본부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사훈>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바람직한 회사 이미지. 직원들에게 바람직한 지향점을 제시하는 의미가 포함되는 내용이면 좋겠다는 단서와 함께였다.

재능이 천박하다 보니 사실 이런 일에 서툴다.

그저 즉흥적이고 충동적 단상이 떠오를 때 그것을 (말이 되건 말건) 읊조리는 데는 약간 익숙하지만...

고민 끝에 이런 일은 고민 하면 할 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을 가졌다.(이런 예감은 정확한 편이다.)

결국 가장 쉽고 무책임(?)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것은 가장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어휘를 선택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바르게만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일을 바르게 하는 사람의 삶은 당연히 바른 삶일 것임은 물론이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바른 사회가 될 것임은 당연하다.

내가 속한 회사는 건설 감리(주로 건축)를 주로 하는 회사이다.

따라서 <바른 건설 바른 삶 바른 사회>로 잡았다. 무난하다는 인상이었다.(가장 포괄적고 단순한 어휘라 당연했는 지도 모르겠다.)

뭔기 찜찜했다. <바른 사회>부분이 걸렸다. 바른 업무 수행을 생활화 함으로서 바른 삶을 살고, 그런 노력이 모이고 모여 바른 사회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좋다. 상식적인 세상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른바 <바른 사회>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 아닌가?


국가의 의미, 역할에 관한 이론은 고대로부터 인문,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으므로 무수한 이론이 나타났다가 시대상황과 함께 변화해 왔고, 현대 문명사회에 이르러 수렴된 국가기능을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현대적 국가기능이 정립되는 기본전제를 한마디로 논한다면, <개개인의 행 불행은 오로지 개개인만의 몫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이 전제를 바탕으로 구성원 중 소외된 계층의 인간 존엄성 보호, 각 집단과 집단, 개인과 집단, 개인과 개인간의 관계가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소한의 책무지만 과연 우리 국가, 우리 사회가 그 조건에 합당한 지는 우리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나는 결국 <바른 건설, 바른 삶, 바른 사회>에서 <바른 건설 바른 삶>으로 수정하고 말았다.

며칠 후 본부장으로부터 그렇게 결정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조금(?) 씁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