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작은 생각의 파편들(1)

안데스의꿈 2016. 12. 2. 23:05

나이에 걸맞지 않게(노후의 안정성 증대를 위해) 내년에 직업과 관련된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라 별로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단골 블로그에 들려 댓글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곤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글은 글이고 내 생각의 일부임은 분명하므로, 주로 시사성 있는 것들을 모아서 종종 올리기로 했다.

우선 최근 것을 올리고 과거의 것들은 시간 날때 틈틈이 올리고자 한다.


1. 박근혜 3차담화 관련.

저는 근래에 촛불집회 참여를 주저해 왔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들이 아프게 되살아날까 두렵기도 하고, 어느 순간 격렬한 감정을 통제 못해 주변사람들을 흥분시킬지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난 19일은 이른바 박사모 맞불집회로 불상사가 날까 심란한 마음에 불현듯 팽목항에 갔습니다.

아직도 미수습자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고, 등대 길 한쪽 기억의 벽에 붙은 4,656장의 타일 그리고 추모 깃발들이 초겨울바람에 휘날렸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끊임 없이 이어지는 추모객들의 모습은 이곳에 억눌린 숟한 한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뭔지 모를 미안함과 부끄러움때문에 분향소에 들어가기가 한참 주저되었습니다.

<공감>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공감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자책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6일 광화문에 갔습니다. 그 곳은 <공감과 연대의 바다>라고 느꼈습니다.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자각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 매우 상쾌했습니다.

역시 <시민>은 공감하고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들의 잔머리는 참으로 경탄(?)할만 합니다.

하지만 정중동이라고 했던가요?

잔머리에는 정직한 정공법이 약이겠지요. <2016.11.29.22.34>


시간이 문제일 뿐 시대의 변곡점을 통과하여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늦어질 수록 사회적 에너지의 소모가 크겠지만 <시민의 열망>이 증가하는 일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열망>은 다가올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의 활력으로 작용하겠죠.

현 시점의 지체현상은 과거 이 사회가 범한 오류에 따른 부채청산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2016.12.1.15.57>


2. 11.5. 광화문 촛불집회 관련.


저 1980년 서울역 집회의 주역은 1977~1980학번입니다. 민청학련 세대는 당시 복학생이었고요, 유신 붕괴 직후 부활한 학생조직은 거의 재학생 위주로 구성되었죠.

따라서 그들은 아직 60대는 아니고요.

1976학번 이전 세대는 엄혹하던 시절이라 반 파시즘성향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대다수는 유신이라는 파시즘이데올로기에 경도되었고, 현재 60대 이상의 보수화는 그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도 초등학교 졸업시까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사의 영웅이라고 교육받아 그렇게 알고 있었고, 열정적으로 국민교육 헌장을 열심히 외웠습니다.)


저 시점의 집회 구성원은 거의가 학생이었고, 87년 6월은 학생시위에 이른바 넥타이부대가 가세하면서 전두환정권이 막을 내렸죠. 7년이 걸린 거됴.

이번 광화문 집회는 80년보다는 (구성원의 성격상)87년 6월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2014년 세월호 여파로 소수의 학생과 시민운동가들의 참여로 이 정권에 대한 시위가 촉발된 뒤 여기까지 2년 반이 걸렸군요.(원인은 여러가지로 분석 가능하지만 팩트만 짚은 겁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저도 공감하고 거기에 한가지 첨언하자면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지지율과 정당의 의석점유율의 불일치는 양당간 독과점의 결과물로 시정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현 시위와 관련한 제 생각은,

2014년 5월 19일 이 블로그에 올려진 <두 얼굴의 대한민국, 대통령은 사과-경찰은 시민 연행>에 달았던 제 댓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매우 착잡합니다


<과거 학내에는 사복경찰이 있었고, 소수의 학생들에 의한 산발적 시위(그들 용어로는 소요)가 일어나면 대기하던 백골단이 투입되어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그것은 공포였고, 그런 시위는 무모하다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1명의 학생이 다치면 그 학생과 가까운 몇명의 학생에겐 분노가 자라났습니다. 그 중의 한두명은 후에 시위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과정이 반복되면서 시위는 확산되고, 다시 더 많은 병력이 투입되고, 그 악순환이 수년간 반복되었죠.

무수한 학생들의 피해가 있었습니다.(1200여명이 연행된 적도 있었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자신의 아들,딸,조카,동생들의 피해에 대한 분노가 자라났습니다.

87년 학생들의 시위에 일반인들이 가세했습니다.

그리고 87년 6월이 왔습니다.

저는 지금 이 정부의 대응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두환 정권이야 출발부터 비정상이었기에 그렇게 대응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저런 연행의 모습을 2014년에 다시 보는 것은 정말 트라우마입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집시법....

과거와 같은 피해학생이 단 한명도 없길 기원합니다.

이 정권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인식하는 아집에서 벗어나길 기원합니다.

이 정권이 이후로 큰 무리 없이 임기를 마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6.11.8.12.32>


미국의 트럼프 당선으로 보수언론이 많이 호들갑을 떨 것입니다.(볼 필요 없이 답이 나올 일이죠)

최순실 정국을 물타기 하는데 이런 호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 생각에 너무 호들갑 떨 일도 없고, 애써 무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표리의 양면성이 있고, 우리는 그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없습니다.

동전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클린턴이 당선되었다고 우리에게 좋은 영향만 있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고 우리에게 나쁜 영향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4년 후의 미국은 지금보다 많이 약해져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가치 지향점이 현 미국사회의 문제를 완화하기 보다는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리라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도 우리에게 악영향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우리는 건강한 시민의식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6.11.10.10.46>


저는 훗날 사회학자들이 이렇게 평가하길 기원합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과 미국사회는 닮은꼴의 전환기를 보냈다.

한국은 노무현이라는 비주류 진보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뒤따라 미국은 비슷한 성향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그들은 취약계층의 복지 증진, 중산층의 몰락과 서민층의 빈민화, 상류층으로의 부의 집중 가속화에 따른 사회 양극화 해소에 진력했으나 기득권구조의 강고한 저항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개혁(피로)에 따른 시대착오적 반동정권이 출현하여 사회활력의 현저한 후퇴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들의 뜿은 <건강한 시민>의 각성을 촉진하여 반동정권에 의한 퇴행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양국은 5~10년의 간격으로 한국의 변화를 미국이 뒤따르는 닮은꼴 현상을 보였다. <2016.11.10.12.20>


3. 최순실정국 초기 각 대학 시국선언 관련.


저는 이 정권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기왕이면 오래 살고싶은데 지남 4년을 40년처럼 살았으니 36년이나 더 산 셈이죠.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2016.11.1.09.49>


제 견해로,

결국 해방 이후의 우리 사회상을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일정 정도의 가치지향성을 가진 시민들의 <변화에너지>와 정교한 권력지향적 네트워크로 (수동적으로)움직이는 신민들의 <운동에너지>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죠.

평상시에는 운동에너지가 압도하지만, <권력지향적 네트워크의 폭주>가 생기면 신민들의 방향성이 상실되어 운동에너지의 발생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죠.

해방 직후, 4.19. 1980년의 짧았던 봄, 1987년 6월, 그리고 지금이 그런 시기에 해당되겠죠.

지금까지의 경우 짧은 기간동안 <권력지향적 네트워크 복구> 과정을 거쳐 신민들의 운동에너지가 재생산되는 과정이 반복되었죠.

지금이 과거와 다른 점은 정보의 실시간 공유와 확산인데 이것이 이후의 상황전개에 어껀 변수로 작용할 지 흥미롭긴 합니다. <2016.11.5.14.58>


비겁하다는 것은 사전적 해석으로는 <당당하지(혹은 떳떳하지) 못하고 겁이 많다>는 정도가 되겠죠.

100명의 성인에게 비겁하게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99명쯤은 옳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겁하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는,

1. 고지식하다. 2.융통성이 없다. 3.모난 돌이 정 맞는다. 4.조직에 융화하려 하지 않는다. 5.너무 순진하다... 등등으로 말하죠.

그래서 <가치전도의 사회>죠. <2016.11.4.12.59>


4. 탄핵정국 관련.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라면 분명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공감과 연대이다>라고 말하셨으리라 추측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대동소이하지만 현실상황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저는 그것때문에 행복합니다)

표면적으로 지난 9년간의 <역주행>이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이면에서는 10년간 진전된 절차적 민주화에 따라 광범위한 대중에게 <시민의 자각>을 촉진하였고,

이런 궤리에 따른 모순이 임계점에 이르러 나타난 현상이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2016.12.2.10.38>


현재의 촛불이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대중들이 직,간접적인 현장학습효과를 통해 시민으로서 자각하고, 그 결과로 시민층의 대폭적 저변확대를 가져오는 거죠,

<대중의 시민화>라고 할까요?

그 결과 현재까지의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박정희 신화>는 원래 왜곡된 가짜였으므로 가장 먼저 붕괴될 것입니다.

이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에서는 우리가 아파하는 문제들이 많이 개선되겠죠. <2016.12.3.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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