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2)

안데스의꿈 2022. 2. 14. 05:59

4. 사과

내 바둑은 빠르게 진보했다.

어느날 작은형과 바둑을 두었다. 칫수 고치기였다. 내가 형에게 몇점 놓던 시절이었는데 형이 중학교 2학년,내가 국민학교 3한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형과 네살 차이지만 형은 초등학교를 7살,나는 8살에 입학해서 5년 차이였다. 형이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려다 실패하여 1년이 좁혀졌다.)

한판의 승패에 따라 한점씩 변경하고 만방이면 두점씩 변경하는 조건이었다. 내가 크게 불리하여 항복했다. 하지만 작은형이 만방이 가능하다며 끝까지 두자고 했다. (만방 형세는 아니었다) 바둑이 끝나고 계가 도중 작은형이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쪽을 떼어냈지? 그렇지 않아도 만방 안되는데 뭐하러 그래?> 형이 오해를 한 것이다.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을 보이기 싫어서 밖으로 나왔다.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대문 밖으로 나왔다. 조금 울고나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누군가 내 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작은형이었다. <내가 만방이 아닌 바둑을 우겨서 억지로 두게 하고, 계가 할때도 만방이 안되니까 네가 속일 이유가 없는데 내가 오해했다. 미안하다.>

나는 그 말에 날씨가 갑자기 활짝 개는 착각을 느꼈다. 작은형은 역시 좋은 사람이었다. 

 

5. 시험

작은형과 나는 초등학교를 1년 같이 다녔다. 내가 1학년때 형은 6학년이었다. 하지만 교정에서 형을 본 것은 몇차례 되지 않았다. 중학교 입시때문에 6학년들은 거의 교실에서만 생활했다. 운동장 조회시간에 6학년중에 가장 컸던 김봉춘 형이 대대장을 했던 기억만 있다. 당시 형은 항상 1등이었다. 항상 2등은 송동헌 형이었다.

작은형이 아파서 며칠간 결석을 했다. 그 후 일제고사 시험이 있었는데 형이 우울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묻자 시험을 잘 못봐서 송동헌 형이 1등을 했다고 말했다. 형은 아프다며 그 다음날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날 오후 형 담임선생님(김동식선생)이 집에 오셨다. 지금까지의 누적점수는 형이 송동헌 형보다 아직 14점이나 앞선다며 형을 위로했다. 나는 송동헌 형이 미웠다.

 

6. 선물

형은 6학년 중 나이가 가장 어렸다.(송동헌 형과는 동갑일 가능성이 있는데 형과 초등학교도 동창인 이수일 형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나이가 어린데도 1등인데다 형은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기에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어느날 형이 하교하면서 신기하게 생긴 물건을 들고 왔다. 어머니가 어디서 난거냐고 묻자 형이 주저하면서 금산사에 사는 누가 선물로 줬다고 말했다. 금산사 누구냐고 물었지만 형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고동껍질 등으로 예쁘게 장식 된 연필꽂이였다. 금산사 상가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소품이었다. 형이 중학교를 전주로 진학하면서 그 물건은 내 차지가 되었다. 그 선물을 누가 했는지는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7. 부상

당시 교실은 나무판자 바닥이었는데 판자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가끔 가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어느날 형을 친구 두어명이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왔다.(아마 형이 5학년때였던 것 같다) 엄지발가락 부근에 피가 흥건했다. 교실 바닥의 판자에서 나온 가시가 엄지발톱 밑에 박힌 것이다.(왼쪽인지 오늘쪽인지는 기억에 없다) 이버지가 형을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셨다. 수술해서 가시를 빼냈다고 했다.

그후 몇달간 형의 엄지발까락은 가운데가 째진상태였다. 하지만 발까락은 좀처럼 낫지 않았다. 어느날 형이 가시를 직접 빼냈다며 엉터리 수술이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새 발톱이 형성되어 그 상처가 완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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