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3)

안데스의꿈 2022. 2. 15. 05:39

8. 먹물

형은 붓글씨를 잘 썼다.  어느날 형이 상을 타왔다. 몇개의 붓과 분홍색 먹물통이었다. 그리고, <불내고 울지말고 너도나도 불조심> 이런 표어가 붓글씨로 써진 종이도 가져왔다. 아마 소방 관련 행사의 일환으로 붓글씨 표어 모집이 있었는지 모르갰다. 부모님이 붓글씨를 잘 썼다고 칭찬하시고 그 것을 방 책상이 놀인 벽에 붙였다. 그 글씨는 형이 중학교에 진학하여 전주로 떠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붙어있었다.

문제는 형이 타온 그 상품이었다. 분홍색의 그 먹물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것을 만져보고 싶었다. 어느날 혼자 있을때 그것을 만져 볼 기회가 있었다.  한쪽 끝에 구멍이 뚤려있었다. 그 구명을 살피다가 그 구멍에서 먹물이 흘러나왔고 그만 내 옷을 적시고 말았다. 문제는 그 옷이었다. 그 옷은 내 옷중에서 명절날에나 입는 가장 좋은 옷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가 심하게 야단을 치셨다. 나도 많이 속상했다. 

 

9. 드레스 미싱

작은형이 언젠가 페이스북에 미싱에 관해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에 형이 딱 한번 어머니에게 야단맞은 적이 있다. 바로 그 미싱과 관련해서다.

형은 손재주가 있어서 뭔가를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럴때면 나는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그것을 구경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형은 만들다 말고 창고나 아니면 집 안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중단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열악한 상황에서 의도한 것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신기한 것을 만들어 내곤 했다. 어느날 형이 좀 두꺼운 종이를 접고 미싱으로 박음질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완성되기 전에 어머니가 바느질감을 들고 오시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어머니는 미싱을 사용하시다가 형에게 야단을 치셨다. <네가 뽀루가미를 쓰니까 잘 안되잖아> 형이 중한교 진학 전에 어머니께 야단맞은 적은 그때 딱 한번이다. 어머니는 둘쩨형을 많이 아끼셨다. 내 생각에는 형이 이공계를 지망했어도 상당히 의미있는 성과를 냈으리라 생각한다. 

 

10. 위기

마을을 둘러싼 남쪽 산 밑을 끼고 냇물이 흘렀다. 모악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라서 수량이 제법 되었다. 

중간중간 보를 막아서 논에 물을 댔다. 학교 밑에 점촌이라는 곳에 보가 있었다. 그곳은 물이 깊어서 여름에는 마을 아이들의 물놀이터가 되었다. 보 밑은 약 30m 정도 암반이 평평하게 드러나 있었고 그 위를 물이 얕게 흘러서 부드럽고 미끄러운 이끼로 덮여있어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곤 했다. 그곳은 너무 미끄러워 서서 걷다가 넘어지기 십상이라 대부분 앉아서 미끄럼을 타곤 했다. 하지만 작은형은 넘어지지 않고 서서 걷곤 했다. 어느날 내가 미끄럼을 타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 형이 서있었다. 문제는 형이 내 반대방향을 향해 서있었기 때문에 내가 미끄러져 내려온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멈추려고 했지만 미끄러운 상태에서 약간의 속도가 붙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당황해서 형에게 비키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왠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형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형과 부딛치는 순간 나는 형을 향해 두 팔을 뻗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때문에 다행스럽게 바닥에 부딛치지는 않았다. 끄때의 두려움과 안도감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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