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4)

안데스의꿈 2022. 2. 19. 06:27

11. 김동식 선생님

형이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은 김동식 선생님이라는 분이었다. 형을 무척 아꼈던 기억이 있다. 형이 졸업하고 1~2년쯤 후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내가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안계실때 몇번 우리반 수업을 하신 적이 있다. 수업 중간에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또 수업중에 떠들거나 해찰을 하는 학생이 눈에 띠면 들고있던 분필을 집어던지는데 신기하게도 그 분필은 해당 학생의 머리에 정확하게 맞곤 했다. 그 학생은 그 분필을 주워서 가지고 나와야 했다.그 선생님의 큰아들(정호)과 나는 1학년때 같은 반이었다. 어머니가 어느날 저녁에 그 선생님 집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선생님과 대화하는 동안 나와 정호는 장난을 치다가 잠들어 있는 정호의 동생을 건들고 말았다. 아기가 심하게 울어대자 정호의 어머니가 아이를 달랬다. 다행이 야단을 맞지는 않았다.

몇년 전 한가위때 고향마을에서 백인기라는 초등학교 3년선배를 만나서 차를 마실때 선배의 푸념을 들었다. 그 선배가 고학년때(5학년때인지 6학년때인지는 확실히 못들었다) 김동식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시험이 끝나기만 하면 <이종철(형의 초등학교때 이름), 송동헌처럼 공부 잘 하는 놈이 없다>고 타박을 들었다는 것이다.

 

12. 실종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인데 어릴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형의 실종 이야기와, 아버지에게 들었던 형의 특별식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형이 두세살때의 일이었나보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날 형이 실종되었다. 당시 우리집(내가 일곱살때 철거하여 현재는 밭이다.)은 초등학교 뒷편이었다. 우리집에서 동쪽으로 전답의 둑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오솔길은 200m정도 이어지다가청도리,전주로 가는 신작로와 만난다. 오솔길과 신작로가 만나는 곳은 약 2m정도 높이의 턱(낭떠러지)이 있었다. 당시 형은 집에서 오솔길로 나왔다가 눈보라때문에 방향을 잃었던 것 같다. 길을 잃은 아동들은 무조건 앞으로 직진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형은 200m 정도를 걸어서 청도리,전주로 가는 큰길로 이어진 곳까지 갔다가 탈진했던 것 같다. 어린 유아에게 200m의 눈길은 힘겨웠으리라. 어머니는 형을 찾으려고 해메다가 그 오솔길을 따라갔고, 신작로와 만나는 낭떠러지에 기대어 있는 형 위로 눈이 덮여 가까이 가서야 형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체되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형은 그 후유증이 상당했던 것 같다. 음식을 잘 먹지 못해 야위었고, 달걀을 활용한 특별식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형은 우리 3형제 중에 체격이 가장 작았다. 

 

13. 진학

형의 중학교 진학을 전주로 한다는 방침은 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문제는 어느 중학교를 택하느냐였다. 담임선생님은 북중을 추천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형 다음으로 항상 2등을 했던 송동헌 형이 북중을 응시했던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하지만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성적이 합격권이라 해도 촌놈이 위축되어 제 실력을 발휘 못하리라는 걱정이었다.

형은 결국 서중에 응시했다. 입학성적은 7위였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북중에 응시하지 못하게 한 것을 후회하곤 했다. 형은 처음에는 농협에 근무하는 사촌 형 집에 있다가 나중에 사촌 형이 타지로 전근발령이 나자 다른 지인 댁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곳은 이동현이라는 분 댁으로 <계룡당 한약방>이었다. 그 집은 2남 1녀였고 딸이 막내였는데 형과 동갑이지만 학교는 1년이 늦었다.

그 집의 차남은 이경열 이었는데 유도를 배우고(3단이라고 들었음) 좀 건들거리는, 다소 불량기가 있는 청년이었다. 이 환경이 형에게는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을 추억하다(5)  (0) 2022.02.20
형을 추억하다(5)  (0) 2022.02.20
형을 추억하다(3)  (0) 2022.02.15
형을 추억하다(2)  (0) 2022.02.14
형을 추억하다(1)  (0)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