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7)

안데스의꿈 2022. 3. 15. 00:10

18. 거인 풀바니안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쯤으로 기억된다. 같은반 동네 친구중 누군가가 <거인 풀바니안>이란 만화책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만화 대본점용이 아니고 정식 출판되어 서점에서 팔림직한 책이었다. 미국 원주민 설화에서 유래된 미국 원작의 만화를 국내용으로 <신동헌>이란 만화가가 각색해서 그린 작품이었다. 미국 원주민에게 전해진 거인설화라 내용이 무척 황당무계 했다(거기다가 신동헌 화백의 과장도 첨가되었음직 하다). 그 친구가 보는 것을 틈틈이 어깨너머로 보긴 했지만 그 전체를 보고싶었다. 책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절대 빌려주지 않았다. 어느날 집에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용돈을 주셨다.  그 친구에게 10원인가를 주고 드디어 그날 해질녁까지 돌려주기로 하고 빌려서 집으로 가져왔다.

책을 다 읽고 작은형이 이어서 읽었다. 형이 3분의 2정도 읽었을때 그 친구가 책을 찾으러 와서 결국 형은 그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돌려주어야 했다.

그 다음날부터 그 책을 다시 빌려오라는 작은형의 부탁에 시달렸다. 결국 형이 못읽은 부분을 기억나는대로 이야기를 해주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지금은 두대목만 기억에 남아있다. 

1) 풀바니안이 어느날 대서양에서 거대한 물통에 가득 물을 길어오다가 물을 엎질렀다. 큰 홍수를 애방하기 위해 삽으로 땅을 파서 양쪽으로 둑을 쌓았다. 그때 엎지른 물길이 지금의 미시시피강이고, 양쪽의 둑은 동쪽이 지금의 애팔레치아산맥, 서쪽이 지금의 로키산맥, 둑을 쌓느라고 흙을 파낸 자리가 지금의 오대호라고 한다.

2) 중부 평원지대에 옥수수를 심었는데 날이 뜨거워 옥수수가 금방 자라고 옥수수 알맹이가 모두 더 뜨거운 바닥으로 떨어져 순식간에 하얀 옥수수 팝콘이 되었는데 때마침 불어온 강픙에 하얀 팝콘이 소 방목지대로 날아가자 소들이 대량의 우박이 내리는줄 알고 모두 얼어죽었다.

 

며칠 후 그 책을 다시 빌릴 수 있어서 형에게 전했다. 형이 다 읽고 나서 내가 해준 이야기와 책 내용이 거의 같다면서 기억력이 대단하다고 나를 칭찬했다. 형에게 처음 받아본 칭찬이라 기뻤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책을 읽고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에 비슷하게 이야기를 전한 나의 기억력보다, 나에게 이야기를 듣고나서 며칠 후에 책을 읽고 내 이야기가 정확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던 형의 기억력이 더 낫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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