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10)-형의 바둑에 관한 몇몇 기억들-2

안데스의꿈 2022. 4. 14. 09:56

어릴때 작은형 옆에 있을때가 가장 즐거웠다. 나와의 대화에 친절하게 응해주는 사람은 작은형이 유일했다. 집에 바둑사랑방이 형성된 뒤에는 그 방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무렵 나는 바둑을 몰랐지만 승패의 결과는 대국자의 국후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작은형은 거의 이겼다. 형이 이기면 기뻤고 가끔 지면 우울해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작은형의 초등학교 동창인 조학재 형이 정종삼 형과 함께 왔다. 조학재 형은 그 방 단골이었고 정종삼 형은 그날 처음이었다. 작은형과 대국을 시작하는데 서로 백을 양보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형은 거의 백만 잡았었기 때문이다. 대국이 진행되는데 형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안방에서 점심식사를 할때도 형은 오지 않았다. 식사 후에도 좀처럼 대국이 끝나지 않자 큰형이 와서 그 바둑을 살피더니 작은형에게 말했다.

<야, 진바둑 붓들고 있으면 이겨지냐?> 하더니 바둑판을 쓸어버렸다.

그로 인해 바둑을 계속 할 분위기가 사라졌다. 정종삼 형이 <다음에 언제 또 두지>하며 학재형과 함께 돌아갔다. 큰형도 나가고 방에는 작은형과 또 다른 친구(그 형의 이름은 기억에 없다)와 나만 남았다. 작은형이 <앞으로 바둑을 안두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형이 작은형을 위로했다. 그 위로 덕에 작은형의 기분이 풀린 듯 했다. 

-그무렵 나는 바둑을 배우기 전이므로 대국의 내용은 그로부터 몇년 후 내가 정종삼형을 이길무렵 들었던 그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정종삼형은 주로 세력을 선호하는 편이라 돌이 중앙으로 향한다. 작은형은 전주에서 고수들의 바둑을 접했으므로 아무래도 당시의 바둑이론에 충실해서 귀와 변의 실리를 차지했다. 결국 귀와 변의 실리와 중앙의 세력 양상의 전개였는데 중앙이 컸다.>

위 내용을 내가 해석하면 이렇다. 실력이 비슷할때 세력바둑과 실리바둑이 처음으로 대국하는 경우 세력바둑이 승리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첫쩨는 당시 바둑이론(3선의 실리는 세력과 그 가치가 비슷하다)의 오류이다. 알파고 이후 삼선실리의 가치는 세력보다 못하다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둘쩨는 기풍의 상성문제다. 세력바둑을 두는 쪽은 상대의 작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실리바둑은 주로 정석에 충실하므로). 하지만 실리바둑을 두는 쪽은 그 반대이다. 그 자체로 이미 불리하다. 몇판인가의 대국을 한 후에는 그런 불리함이 해소되어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당시 형보다 1년 빠른 최정호형 그리고 정종삼형과 작은형의 실력이 비슷했다. 최정호 형은 바둑이 무척 섬세하고 잔수가 밝았다. 따라서 하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종삼형은 힘이 강하고 세력을 좋아해서 종종 대마를 잡곤 했다. 작은형은 당시의 바둑이론상 균형잡힌 표준형의 바둑이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재미있다. 작은형과 정호형의 대국성적은 작은형이 일방적으로 우세했다. 하지만 정호형과 정종삼형의 대국은 정호형이 우세했다. 반면 작은형은 정종삼형과의 대국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잘해야 반반승률을 유지했고 우세한 적은 별로 없다. 그것은 바둑의 상성으로 설명 될 수 있으나 좀 전문적 영역이므로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