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 7

형을 추억하다(6)

17. 세계관 1970년대 초반 겨울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유신 전이었던 것은 틀림 없으므로 70년 12월 ~ 1972년 1월 사이였을 것이다. 어느날 저녁 형이 라디오 다이얼을 정성스럽게 맞추고 있었다. 나는 뭔지 모르지만 기대를 갖고 지켜보았다. 형은 cbs 라디오방송(이리지국이 있었음)에 다이얼을 맞추었다. cbs 교양강좌였다. 어느 순간 진한 경상도 사투리의 강연이 흘러나왔다. 강사는 서울대학교 한완상 교수라고 소개했다. 내용은 불의에 침묵하는 비겁한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었다. 강의에서는 그것을 불의에 눈을 감는다고 표현했다. 이후 게그식 표현으로 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을 지금 보면 두가지로 해석 할 수 있는데 안개(眼開)지수라는 의미라면 안개지수가 높은 지식인이라야 바른 지식인이라..

나의 이야기 2022.02.20

형을 추억하다(5)

14. 영어 형은 전주 서중으로 진학이 확정되었다. 입학일은 3월 5일이었다. 졸업반이 되면 2월달 수업이 없어지므로 입학일까지 상당한 시간이 남는다. 어느날 아버지가 조그만 책을 구해오셨다. 이라는 제목의 영어 입문서였다. 아버지는 입학 전까지 그 책을 끝내야 한다면서 그날(1965년 1월 초)부터 그 책을 교재로 형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처음 보는 영어가 신기해서 옆에서 구경하곤 했다. gentleman같은 단어는 그때 옆에서 주워들어서 기억 한 것이다. 어느날 외출했다가 돌아온 형이 송동헌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송동헌 형이 형에게 자기는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현재 영어단어를 50개정도 안다고 했다 한다. 그 날 이후 좀 지지부진하던 영어 첫걸음의 진도에 가속이 붙었다. 그 과정을 큰형도 유심히..

나의 이야기 2022.02.20

형을 추억하다(5)

14. 영어 형은 전주 서중으로 진학이 확정되었다. 입학일은 3월 5일이었다. 졸업반이 되면 2월달 수업이 없어지므로 입학일까지 상당한 시간이 남는다. 어느날 아버지가 조그만 책을 구해오셨다. 이라는 제목의 영어 입문서였다. 아버지는 입학 전까지 그 책을 끝내야 한다면서 그날(1965년 1월 초)부터 그 책을 교재로 형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처음 보는 영어가 신기해서 옆에서 구경하곤 했다. gentleman같은 단어는 그때 옆에서 주워들어서 기억 한 것이다. 어느날 외출했다가 돌아온 형이 송동헌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송동헌 형이 형에게 자기는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현재 영어단어를 50개정도 안다고 했다 한다. 그 날 이후 좀 지지부진하던 영어 첫걸음의 진도에 가속이 붙었다. 그 과정을 큰형도 유심히..

나의 이야기 2022.02.20

형을 추억하다(4)

11. 김동식 선생님 형이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은 김동식 선생님이라는 분이었다. 형을 무척 아꼈던 기억이 있다. 형이 졸업하고 1~2년쯤 후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내가 2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안계실때 몇번 우리반 수업을 하신 적이 있다. 수업 중간에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또 수업중에 떠들거나 해찰을 하는 학생이 눈에 띠면 들고있던 분필을 집어던지는데 신기하게도 그 분필은 해당 학생의 머리에 정확하게 맞곤 했다. 그 학생은 그 분필을 주워서 가지고 나와야 했다.그 선생님의 큰아들(정호)과 나는 1학년때 같은 반이었다. 어머니가 어느날 저녁에 그 선생님 집을 방문했다. 어머니가 선생님과 대화하는 동안 나와 정호는 장난을 치다가 잠들어 있는 정호의 동생을 건들고 말았다. 아기가 심하..

나의 이야기 2022.02.19

형을 추억하다(3)

8. 먹물 형은 붓글씨를 잘 썼다. 어느날 형이 상을 타왔다. 몇개의 붓과 분홍색 먹물통이었다. 그리고, 이런 표어가 붓글씨로 써진 종이도 가져왔다. 아마 소방 관련 행사의 일환으로 붓글씨 표어 모집이 있었는지 모르갰다. 부모님이 붓글씨를 잘 썼다고 칭찬하시고 그 것을 방 책상이 놀인 벽에 붙였다. 그 글씨는 형이 중학교에 진학하여 전주로 떠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붙어있었다. 문제는 형이 타온 그 상품이었다. 분홍색의 그 먹물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것을 만져보고 싶었다. 어느날 혼자 있을때 그것을 만져 볼 기회가 있었다. 한쪽 끝에 구멍이 뚤려있었다. 그 구명을 살피다가 그 구멍에서 먹물이 흘러나왔고 그만 내 옷을 적시고 말았다. 문제는 그 옷이었다. 그 옷은 내 옷중에서 명절날에나 입는 가장 ..

나의 이야기 2022.02.15

형을 추억하다(2)

4. 사과 내 바둑은 빠르게 진보했다. 어느날 작은형과 바둑을 두었다. 칫수 고치기였다. 내가 형에게 몇점 놓던 시절이었는데 형이 중학교 2학년,내가 국민학교 3한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형과 네살 차이지만 형은 초등학교를 7살,나는 8살에 입학해서 5년 차이였다. 형이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려다 실패하여 1년이 좁혀졌다.) 한판의 승패에 따라 한점씩 변경하고 만방이면 두점씩 변경하는 조건이었다. 내가 크게 불리하여 항복했다. 하지만 작은형이 만방이 가능하다며 끝까지 두자고 했다. (만방 형세는 아니었다) 바둑이 끝나고 계가 도중 작은형이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이 오해를 한 것이다. 나는 눈물이 나는 것을 보이기 싫어서 밖으로 나왔다.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나의 이야기 2022.02.14

형을 추억하다(1)

1. 달떡과 별떡 세살쯤이었을까? 명절 전날쯤이었나보다. 어머니가 떡을 두 형들과 나에게 한쪽씩 주셨다. 두 형들은 그것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너무 어려서 거의 먹지 못하고 손에 들고있었다. 큰형이 나에게 하고 말했다. 큰형은 평소 나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큰형이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 너무 좋아서 큰형에게 떡을 선뜻 건넸다. 작은형이 옆에서 라고 했지만 못들은 척 했다. 큰형은 네모진 떡의 네 귀퉁이를 베어먹고 나에게 주었다. 떡은 둥그렇게 되었지만 크기는 작아졌다. 큰형이 다시 말했다. 나는 또 큰형에게 떡을 건넸다.작은형이 또다시 라고 했지만 또 무시했다. 큰형이 떡의 중간중간을 베어먹고 별모양의 떡을 만들어 나에게 건네줄때는 너무 작아졌다. 내가 받으려 하자 큰형은 그것마져 날름 삼..

나의 이야기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