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대하여

바둑에 대한 단상 1

안데스의꿈 2016. 3. 16. 11:39

1> 나의 바둑 입문기

3형제중의 막내인 나는 형들이 친구들과 바둑 두는 것을 구경했고 뭔가 아주 어려운 것이라 나와는 관계 없는 것으로만 알았다.

어느날 내가 따르던 둘쩨형 친구(형들은 사실 좀 무서웠고 형들의 친구들이 당시에는 더 좋았다)중 이대홍(아명이라 후에 개명했고 2천년대 초 전교조 위원장 했음)형이 집에 놀러 왔는데 마침 판이 벌어지기 전이라 나에게 바둑을 두자고 했다. 둘 줄 모른다고 하자 둘러쌓고 나서 두집을 내면 살고 못내면 죽는다는 말만 듣고 대국에 임했다. 내 돌이 크게 둘러 쌓였는데 나는 두집을 냈기에 안심했는데 나중에 못살았다고 해서 두집이라고 주장하니까 "따로 따로 집을 내야지 합쳐서 두집은 속에 메꾸서 따낸 다음 다시 따낼 수 있기에 못사는 거라는 말에 머릿속을 뭔가 밝은 빛이 스치는 착각을 느낀 뒤 바둑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하지만 당시 (1960년대)는 바둑이 "잡기"로 취급되었고, 그런 잡기를 아홉살배기가 가까이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었다.(누가 잘 상대 해주려 하지 않았다) 마을 어른들이 두는 것을 곁에서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상대 없는 바둑판만 기웃거리던 어느날 마루에 펼쳐진 신문(당시 집에서 신문을 몇종류 구독했다)에 바둑판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둑돌 모양에 번호가 적힌 것은 돌을 놓은 순서라는 것은 직감으로 알아챘다.

해설까지 있어 정말 기뻤지만, "세력", "실리", "두터움", 경쾌함", 등등의 용어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심하다가 언잰가 형이 서재의 사전을 들추던 장면이 생각나서 사전을 놓고 시름했다. 그럭 저럭 사전에서 낱말을 찾는 방법은 숙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전의 해설을 본다고 해도 알쏭달쏭 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해설을 염두에 두고 기보를 보는 일로 하루 한두시간씩을 보냈다. 다행이 신문이나 사전을 뒤적이는 것은 기특해 보였는지 별로 제지받지 않았다.

그것이 익숙해지면서 드디어 바둑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결국 나의 바둑은 신문 기보를 통한 독학의 결과인 셈이다. 이후 빠른 속도로 진보하여 중학시절인 70년대 초에는 프로 입문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집안의 반대로, 바둑은 나에게 직업이 아닌 취미로만 남게 되었다.

그 후 인터넷 바둑이 활성화된 후 "오로바둑"에서 이른바 "왕별"로 활동하다 한 3년 전쯤부터는 그나마 뜸해져서 지금은 거의 활동을 접은 상태다.


2> 이세돌과 알파고

지난 3월 9일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기 중 1국이 두어지던 날의 충격은 며칠간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비록 전문수업을 포기했지만, 세미프로가 된지 수십년에 이른 내공으로 초일류들의 대국이라 할지라도 독자적 해석능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흑(이세돌) 67에 대하여 백(알파고) 68부터 76에 이르는 알파고의 수순은 나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우선 흑 67에 대한 백 68은 "임기응변의 선수 확보"이며 백 68부터 백 76에 이르는 수순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구상력"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고 그 구상 자체가 대단히 위력적이어서, 그 자체로 판의 골격이 결정되고 이세돌(인간)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할 공간이 대폭 좁아져버린 탓이다. 알고리즘이 연산, 논리 등의 영역에서 인간과 비교불가인데 임기응변,구상력까지 인간의 영역에 도달했다면 인간에게 전혀 승산이 없는 것 아닌가? 만약 바둑까지 이렇게 쉽게 정복된다면 인간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사춘기 무렵의 방황 이후 처음 경험하는 철학적(?) 고민이었다. 다행이 1년에 몇차례 술자리를 같이 해주시는 해당 전공 교수분이 한 분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해당 분야에서 국제적 명망이 있는 학자로 현재는 알고리즘을 의료기기에 적용하는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그 분의 설명에 따라, 알고리즘의 기본 작동원리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어 어느정도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바둑판의 모든 눈에(361) 따른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 하지만 바둑의 경우의 수는 대단히 크긴 하지만 유한하다.

바둑의 "룰"과 "기리"가 경우의 수를 대폭 제한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공간에서는 알고리즘이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

계산기가 인간의 연산능력을 멀찌감치 추월하는 것(그것과 바둑은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다)과 같은 개념이다.

대단히 장황하고 "현학적" 글을 쓰는 어느 분이 알파고가 룰의 제약을 받는 것은 맞지만 기리의 제약을 받는다는 건 잘못된 전제이고,알파고는 룰에 따른 착수금지구역 외 모든 착점을 고려하므로 그것으로 사람의 창조적 상상력을 능가할 수 있으므로 문제인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인간도 "기리"라는 바둑패러다임에 따른 고정관념의 여파가 있지만,("기리"라는 바둑패러다임도 느리지만 끊임 없이 변화한다) 알파고가 가진 방대한 정보(수만판의 기보)도 결국 "기리에 입각한 인간의 대국"이기에,알파고도 "기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3> 알고리즘에 따른 인간사회의 미래.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세속적인 힘은 대략 네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성, 문화, 예술 등 형이상학적 에너지는 제외한다)

1. 정보력.

2. 권력.

3. 금력.

4. 무력.

이 네가지 힘이 균형을 이룰때 인간사회는 평화롭게 번영하고, 불균형할 때 인간사회는 혼란에 빠져들고, 균형이 파괴될 때(파시즘의 출현 등)인간사회는 파괴적 혼란(과거의 종교전쟁, 1,2차 세계대전 등)에 빠져든다. 극단적 불균형상태에서 균형된상태로 회귀하려는 복원력이 작용하는 건 비단 인간사회 뿐 아니라 자연계(예를 들어 이상기후같은 것은 큰 기온편차를 완화하려는 대류에너지의 작용이다)를 넘어 우주의 섭리이기 때문이다.현대사회는 위 네가지 힘이 위태롭게 균형을 이루는 상태이다.


만약 알고릐즘이 발전하여 "초강력 정보력"이 출현하고, 또 그것은 금력(자본)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마침내 위 네가지 힘이 "동일체"가 되는 상황은 어떨까?

그 상황은 혹시 <불가역적 획일주의사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당장 눈 앞의 일로 고민할 게 산더미처럼 많지만 이런 문제도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임은 틀림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