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회현상은 결과이자 과정이다.

안데스의꿈 2021. 9. 20. 18:10

현실은 현 순간시각의 현상이다. 그 <현실>은 그 이전의 무수한 현재의 결과이며 이후에 나타날 무수한 <현재>의 과정이다. 결국 한 순간의 결과는 그 이전의 무수한 현실적 현상들과 직,간접적으로 혹은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문대통령이 윤석열을 중앙지검장에 않힌 것은 큰 성공이었다. 그의 포악함은 <강직한 검사>로 치장되었고 그의 칼날 아래 상당한 <정치적> 적폐들이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칼날은 선택적이었다.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질 사건만 선택적으로 수사했다. 경제범죄사건 같은 것은 자신의 권력추종 행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외면했다.

어떻든 그의 선택적 행보는 성공해서 그는 검찰총장에 임명되었고, 진보진영 대부분이 열광했고, 일부의 우려는 묻혀버렸다. 하지만 그 인사가 대 실패였음이 바로 드러났다. 결국 인사라 함은 아무리 심모원려 해도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사건이다. 그 한계의 이유는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미스히데를 중용한 것은 그 자신의 죽음을 불렀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를 중용한 것도 자신의 죽음을 초래했다. 만약 봉건시대였다면 윤석열의 배신도 그와 같은 결과를 불렀을 것이다.

 

모든 리더는 인사를 잘 해야한다. 수돗물을 만들때 정수를 잘 해야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좋은 수돗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수도 좋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인사를 위해서는 사회에 좋은 인물들이 많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좋은 인물이 되기 위한 두가지 조건은 능력과 인격이다. 하지만 이 사회의 발전에 대응하여 사회 상층부에 좋은 인재들이 늘어났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능력 있는 인재들은 많겠지만 능력과 인격을 겸비한 경우는 과거보다 오히려 (비율상)희소해 졌으리라고 단언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과거와 달리 <염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들은 예기지만, 유신때 정부에 비판적이던 어느 교수가 어느날 장관에 기용된다는 발표가 있는 날 교내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 교수들은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80년대 전두환이가 호헌선언을 했을때 대부분의 대학에서 호헌 반대 시국선언이 있었지만 호헌 찬성 시국선언은 한 건도 없었다. 요즘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한다면 한 대학애서 정 반대의 시국선언이 나오는 것이 필연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이것이 대학에서 인문학이 주류 학문영역에서 퇴출되고 인문학 지망자기 희소해진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인간,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활발한 사회라야 <염치>가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인문학이 축소될때 인문학자들이 조직적으로 반대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회현상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간의 유기적 상호작용의 조합의 결과물이다. 오늘날의 인사실패의 이면에는 능력과 인격을 겸비한 인재의 부족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고, 그 이면에는 <염치>라는 것을 잃은 황폐한 사회현실이 있으며, 그 이면에는 인문학의 축소가 있으며, 그 이면에는 자본논리가 있으며, 그 이면에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있다.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고, 한가지 사회현상이 돌출되어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들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추후 이어서 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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