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1)

안데스의꿈 2022. 2. 13. 19:03

1. 달떡과 별떡

세살쯤이었을까? 명절 전날쯤이었나보다. 어머니가 떡을 두 형들과 나에게 한쪽씩 주셨다. 두 형들은 그것을 맛있게 먹었고 나는 너무 어려서 거의 먹지 못하고 손에 들고있었다. 큰형이 나에게 <달떡 만들어줄까?> 하고 말했다. 큰형은 평소 나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큰형이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 너무 좋아서 큰형에게 떡을 선뜻 건넸다. 작은형이 옆에서 <나도>라고 했지만 못들은 척 했다. 큰형은 네모진 떡의 네 귀퉁이를 베어먹고 나에게 주었다. 떡은 둥그렇게 되었지만 크기는 작아졌다. 큰형이 다시 말했다. <별떡 만들어줄까?> 나는 또 큰형에게 떡을 건넸다.작은형이 또다시 <나도>라고 했지만 또 무시했다. 큰형이 떡의 중간중간을 베어먹고 별모양의 떡을 만들어 나에게 건네줄때는 너무 작아졌다. 내가 받으려 하자 큰형은 그것마져 날름 삼켜버렸다. 나는 그제야 속았음을 알고 작은형을 바라봤지만 작은형은 실망해서 몸을 돌리고 가버렸다. 뭔가 안타까운 잠정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이 <미안함>이라는 것을 훗날 알았다.

 

2. 좋은사람.

내 최초의 외출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임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입학 전 나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작은형밖에 없었다. 작은형이 학교에 갔을때는 심심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가워서 작은형을 졸졸 따라다녔다. 용화동에서 개를 키울때 내가 귀가하면 반가워하는 개를 보고 가끔 엉뚱하게 그때가 떠오르곤 했다. 그무렵 나에게는 작은형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사람이었다. 그런 작은형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서 멀어졌다. 작은형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중학교 입시때문에 나를 상대 할 시간이 없었겠지만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던 나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3. 바둑

우리집 문간방에서 큰형과 작은형 또래의 형들이 모여 바둑을 두던 때가 있었다. 작은형이 가장 고수였다. 나는 그것이 즐거워 우쭐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어려운 것이라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점심 후에 이수일(당시는 대웅이었음)형이 바둑을 두러 왔는데 마침 아무도 없었다.

수일형이 나에게 바둑을 두자고 했다. 나는 룰을 전혀 몰랐지만 수일형과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바둑판에 다가앉았다. 수일형이 <두집나면 사는 것은 알지?> 하기에 고게를 끄덕였다. 바둑을 한참 두다가 수일형이 내 돌이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돌은 두집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 다 메꾸고 그 안에 집어넣고 네가 딸때 내가 또 따잖아?>라고 멀했다. 나는 그 순간 <두집>의 의미를 알았다. 수일형은 내가 룰을 모르는 것을 알고 계가의 의미도 대강 설명했다.

어떻든 그 한판으로 바둑의 룰을 안 것은 큰 수확일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도 바둑보다는 수일형이 놀아준 것에 크게 만족했다. 바둑이 끝날무렵 작은형이 들어오며 말했다.<예하고 뒀어?> 며칠 후 작은형과 나만 있을때 작은형이 나에게 바둑을 두자고 말했다. 나는 전율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작은형이 나에게서 떠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작은형에게 25점을 놓고 시작했다. 그 이후 나는 바둑에 빠져들었다.

내가 고수가 된 후에 사람들이 가끔 바둑을 배운 과정을 물으면 나는 <바둑을 열심히 두면 형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내가 바둑에 빠져든 동기는 작은형과 <놀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바둑을 시작한 동기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내가 프로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아쉽게 생각한 적은 없다.

 

P.S : 형과의 추억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려 했지만 오늘은 감정이 복받쳐서 더 이상은 어렵습니다. 추후에 이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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