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6

안데스의꿈 2016. 1. 25. 13:13

< 운명은 여신이다.... 무모하리만큼 맹렬하개 맞서라 >

마키아벨리는 아마도 이런 운명의 역설을 즐겼을 것이다.
그의 희곡 작품들이 보여주듯, 그는 운명의 장난이나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그리고 피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운명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하잘 것 없는 농부에 불과한 사람부터, 유부녀를 짝사랑한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기발한 재치로 난관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기지를 교묘하게 그려낸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사를 모두 신의 뜿으로 돌리거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말하는 손쉬운 선택을 찾아볼 수 없다.대신 절대적 존재나 자명한 진리를 가지고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부터 버리라는 조언, 그러기에 결코 포기하지 말고 운명에 맞서라는 충고를 마주하게 된다.
<군주> 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자기의 생각을 " 양비론 " (utramque partem )이라는 틀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첫번째로 그는 운명을 " 신의 섭리 " 로 보는 입장을 거론한다.
먼저 그는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신을 헬레니즘의 운명의 여신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그러고는 운명의 여신을 뜻하는 포르투나 (fortuna )가 " 행운을 가져오다 " 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듯이 운명을 " 숙명 " ( sorte )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동시에 그는 운명론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지식인들을 이렇게 비난한다.당신들은 단지 " 많은 땀을 흘릴 필요가 없고 운명(sorte)이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자 " 는 결정론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이다.

< 탁월함. 능력 뜻하는 " 비르투 " ( virtu )....용맹을 넘어서는 리더십 >

다음으로 마키아벨리는 비판의 초점을 " 자유의지 "를 이야기 하면서도 상황론리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입장에 맞춘다.
그는 " 신은 우리로부터 자유의지와 우리 몫의 영광을 빼앗아가지 않기 위해 "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그리고 제방과 도랑으로 물길을 막거나 돌리듯,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 잘 대비하면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절반의 성공 " 을 획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슬며시 꺼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주제를 다시 극단적인 결정론으로 되돌린다. 상황에 맞춰 " 본성 " 과 " 자질 " 을 바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묻는다 상황에 따를 기회만을 강조한다면, 절반의 가능성에 만족한다면, 시대를 한탄하는 것 외에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결국 마키아벨리의 답은 운명에 맞서라는 것이다. " 포기하지 말라 " 는 정도가 아니라, 무모하리만큼 맹렬하게 운명의 소용돌이를 돌파하라고 권한다. 운명의 여신을 " 때려서 눕혀야 " 한다는 표현까지 쓴다. 신도 간절한 기도에 화답한다는 중세적 사고도, 운명의 여신은 노력하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당시의 상식도 훨씬 넘어선다.
키케로가 말한 " 운명은 강한 자를 돕는다. ( fortes fortuna adiuvat ) " 는 절반의 가능성에 머물러 있기보다, 마키아벨리는 신의 섭리를 인간의 의지로 대체할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기의 운명도 이렇게 극복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1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 시리즈 2회분의 일부로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 님 입니다.

'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8  (0) 2016.01.26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7  (0) 2016.01.25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5  (0) 2016.01.23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4  (0) 2016.01.22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3  (0) 201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