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7

안데스의꿈 2016. 1. 25. 17:46

< 구성적 리더십... 시민과 함께 상황 이끄는 지도자의 능력 >

운명에 대해 그토록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종종 마키아벨리가 말한 " 대담성 " 을 " 공포 " 또는 "힘" 의 정치로 단순화 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그가 여우의 영민함보다 사자의 용맹스러움을 더 부각시킨 것은 맞다. 그리고 부패한 공화정의 개혁이나 새로운 정치체제의 설립에 절대적 권력의 행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꿈꾸던 정치가 "힘" 과 "공포" 에만 의존한 것이었다는 해석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예외적인 방식이 일상적 정치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힘" 과 "공포" 로 정의하려 했다면 "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 " 이라는 전제를 내새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리더십의 핵심을 자유로운 시민과 정치지도자의 관계에서 찾을때, 그가 "탁월함" 또는 "능력" 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는 " 비르투 "(virtu ) 라는 단어는 "남성다움" 이나
"사자의 용맹" 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기만과 술수까지 용납되는 여우의 교활함을 더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는 "시민" 또는 "신민" 과 함께 시대적 상황을 구성해 가는 지도자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어떤 품성을 가진 지도자가 이상적인 지도자인지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미래의 지도자에게는 시민 또는 신민이 바로 운명의 여신이라고 말한다. 시민들이 완전히 부패했다면, 절대적인 권력을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시민적 자유 " 가 보장된 사회라면, 아니 "시민적 자유" 가 보장된 사회를 건설하려 한다면, 시민들에게 힘과 권력에 복종하는 습관보다 힘과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보장해 주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를 알고, 이러한필요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비르투"라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마키아벨리의 <군주>19장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있다. 신민에게 자유를 주고, 신민을 무장시키고, 귀족이나 군인보다 신민에게 더 의지해야 할 시대가 왔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과 공포에 대한 화려한 수사 뒤에, "시민" 과 함께 상황을 만들어 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아마 이것이 그가 자기의 생각을 공허한 "진리"가 아니라 "실질적 진리" ( verita effetuale )라고 말한 이유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당시 지식인들을 "우리시대의 현인들" (savide' nostri tempi )이라고 비난한 이유일 것이다.<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1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시리즈 2회분의 끝부분이며,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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