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10

안데스의꿈 2016. 1. 27. 17:15

< "다수"와 "소수"의 정치 심리학...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

미켈레를 통해 마키아벨리는 당시 피렌체의 절망을 토로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그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자신의 정치심리학, 그리고 이런 정치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개혁의 청사진을 담았다. 바로 이것이 <강론>에서 만나는 "자유"와 "갈등"에 대한 그만의 미학적 성찰, 그리고 이를 토대로 제도화하려 했던 "시민적 자유" 와 "전투적 견제"가 공존하는 그만의 제도적 구상이다.
여기에는 "조화"(concordia)를 강조했던, 마키아벨리 이전의 정치철학이 추구했던 도덕적 훈계는 없다. 그리고 어떤 정치적 체제도 당파적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관적 현실주의도 없다. 대신 잘 관리되기만 한다면, 갈등은 안으로는 귀족의 야망과 인민의 무분별한 욕구를 억제해 시민의 자유를 확고히 하고, 밖으로는 시민적 자유를 통해 배양된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강력한 나라를 만들어 낸다는 희망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갈등"이 자동적으로 "시민적 자유" 를 확대시키고 "시민적 역량"을 강화시킨다고 마키아벨리가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 공화정에서는 그러했지만, 피렌체에서는 그렇지 못한 이유가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리고 <강론> 1권 37장이 보여주듯, 그렇게 건강했던 로마 공화정도 "갈등"으로 무너졌다는 점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여기가 바로 "다수"와 "소수"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면밀한 관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바로 여기가 <군주> 9장에서 제시되는 "지배하려는 집단"과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집단"의 기질(umore)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지점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지배받지 않으려는 기질"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신(新) 공화주의"의 "타인의 자의적 의지로부터의 자유" 즉, 즉 "비지배(非支配)자유"라는 정치론에 영감을 제공했다. "신공화주의"에서 "자유(liberta)란 노예와는 달리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조건을 의미하고, 자유로운 시민은 불간섭의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비지배의 조건을 획득하고 지킬 수 있는 견제력까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다수"(lo universale)와 "인민"(il populo)에게서 찾은 "지배받지 않으려는" 기질을 자유의 정치사회적 조건으로 이해하고, "소수"(pochi) 또는 "귀족"(i grandi)의 기질로 분류한 "지배하려는 속성"을 "야망"(ambizione)에 이끌린 잘못된 지배욕으로 파악한 것이다.

<시민적 자유와 다수의 정치...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

마키아벨리의 "자유"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해석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그의 정치심리학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두가지 측면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한다.
첯쩨, 그가 말하는 기질은 계급 또는 계층적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론 > 1권 46장에서 보듯, "지배받지 않으려는 속성"도 때로는 "상대방을 짓누르려는 욕구"로 이전되기도 한다. 인민들 또는 그들 중 일부도 "지배하려는 욕구"를 갖게 될 수도 있고, 귀족도 궁지에 몰리면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측면을 보지 못하면,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구"도 "지배하려는 욕구"처럼 "자유"가 아니라 "방종"(licenzione)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그의 경고를 읽을 수 없다.
둘쩨, 집단적 기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지배하고자 하는 기질"은 언제나 어느 누구에게서나 돌출할 수 있다. 지배하려는 집단의 오만함이 인민에게 지배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피렌체의 "대중지도자들"(popolari)과 같이 대중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잠재적 참주도 있다.
특히 그가 말하는 "귀족"과 "대중지도자들"의 갈등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망에 의해 주도되는 갈등은 "시민적 자유"로 종결되지 않았다는 한탄, 공화정에서도 자기기만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충언, 그리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잠재적 참주에게 "시민적 자유"를 위해 헌신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알려주려는 노력, 바로 여기에 우리의 진지한 고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8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시리즈 3회분의 끝 부분이며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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