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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14

안데스의꿈 2016. 1. 31. 10:10

5. "로마"냐 "베네치아"냐.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안정"의 균형은 제도사상사에서 오랫동안 실형하고자 노력해 온 숙제들 중 하나다.

그러기에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정치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왔다.

플라톤은 지나친 "자유의 추구"가 민주주의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말했고, 루소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국가를 결성한 이유 또는 "일반의기"(volonte gener)를 형성한 이후에 자유로운 토론이 가져올 위험성을 우려했으며, 존 스튜어트 밀 조차도 "자유"와 "방종"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충고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이 한 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파벌이나 갈등이 두려워 자유를 몰수하거나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불이 날까 두려워 공기를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는 지적 말이다.

마키아벨리도 피렌체에 적합한 헌정체제를 구상하면서,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안정"의 균형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했다.

<강론> 3권 9장에서 보듯, 마키아벨리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정치제도가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들 중 하나로 보았다.(백번 지당한 말씀. 옮긴이 생각)

따라서 그는 시민적 자유와 정치체제의 안정이라는 요구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조적일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고자 했다.

문제는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면 정치적 안정이 깨질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 귀족이나 지식인(오늘의 우리나라 지도층도 마찬가지. 옮긴이 생각)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혁명과 반혁명으로 점철된 피렌체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을 심어주었고, 대부분의 귀족과 지식인들은 정치적 안정을 위해 시민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를 제한하거나 억제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마키아벨리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역설적 선택을 한다. 시민의 자유 뿐 아니라 "시민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전개하고, 변화의 요구들이 합으된 제도화의 방법까지도 바꿀 수 있는 정치체제를 꿈꾸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공화정"(la Serenissima Repobblica)으로 평가받던 베네치아를 모방하자고 목소리를 높일때, 그는 "소란스러운 공화정"(una tumultuaria repubblica)중의 하나로 간주되던 로마에 주목했던 것이다.

적절히 다루어진다면, 갈등은 안으로는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대외적으로는, 강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22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시리즈 5회의 도입부이며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