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19

안데스의꿈 2016. 2. 5. 09:40

< "다수"의 정치 : 결과를 본다(si guarda al fine)>


궁극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체사레는 "좋은 평판"의 잣대를 "다수의 지지"에서 찾는다. 자기의 심복들 중 가장 "잔인하고 재빠른 인물"이었던 라미로의 통치가 인민들의 증오를 불러일으키자, 체사레는 인민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들을 전적으로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라미로의 몸을 두동강내어 피 묻은 칼과 함께광장에 보란듯이 전시한다. 

라미로의 혹독함과 체사레의 잔인함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자가 다수의 분개를 초래했다면, 후자는 다수에게 큰 만족을 가져왔다.

동시에 전자의 "과도한 권위"가 "자의적"이라는 평판을 불러일으켰다면, 시민법정을 설치해서 라미로의 죄를 공개적으로 물음으로서 후자의 "제왕적 권위"는 공정하다는 인상을 가져다 주었다.

결국 체사레는 <군주 18장에서 마키아벨리가 충고한 "결과를 본다"(si guarda fine)는 말을 가장 잘 이해한 군주였던 셈이다.

분열을 일으킨 "소수"에게 잔인하게 하는 대신, 지배받지 않고 안전하게 살기를 원하는 "다수"를 만족시켜야 할 이유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 공동체의 존속과 다수의 행복을 가져올 때, 그리고 이러한 결과가 지속적으로 그 목적들을 위해 소용될때, <잔인함>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이 광경을 <군주> 7장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인민들은 "만족을 느끼면서도 멍해졌다"(satisfatti e stupidi)고 말이다. 인민들은 자기들의 요구가 충족되었다는 만족감만큼이나 정치적 권위의 엄중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뜿이다.

<군주>를 읽다 보면 체사레가 마치 질병으로 죽은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왜냐하면 <군주>에서는 체사레가 율리우스 2세에게 감금당했다가 탈출해서 처남이 다스리는 북스페인의 나바라 왕국으로 간 것, 그곳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 사령관이 된것, 그리고 이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복병에게 공격을 당해 참혹하게 숨졌다는 것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키아벨리가 체사레의 몰락을 오랬동안 적대적이었던 "소수"의 말을 믿어버린 "잘못된 선택"(mala elezione)에서 찾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체사레는 산안젤라 성에서 요양하고 있었지만, 주둔하고 있던 자신의 군대로 충분히 추기경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대의 위협때문에 교황을 선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추기경들의 탄원을 받아들였고, 오랬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후원 약속을 믿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타인의 운"으로 권력을 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체사레가 또다시 "타인의 힘"에 자신의 운명을 거는 선택을 했다고 한탄한다.

마키아벨리의 생략은 또 다른 의미의 웅변이었던 셈이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6월 29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시리즈 6회의 끝부분으로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