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허위의식.

지식인과 허위의식 조명 5

안데스의꿈 2016. 2. 15. 23:21

지식인과 허위의식.


1> 머리말


우리는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생각, 느낌, 그리고 행동이 각각 찟기는 아픔을 안고 살고 있다. 우리의 사고에 일관성이 없어지고 우리의 느낌이 불규칙해지며 우리의 행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정말로 옳고 진실한 것이며 무엇이 나쁘고 거짓인지 명쾌히 판단하지 못한 채 정신적 혼동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느낌과 생각, 생각과 행동, 행동과 느낌, 그리고 생각과 느낌과 행동이 각기 다른 구심점을 중심으로 난폭하게 선회하는 상황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정신분열증의 증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아마도 지나치게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이 같은 분열 증세를 갖게 되는지 모른다. 급변의 와중에서 주도적인 가치체계가 쉽게 무너지면서 그 자리에 새롭고 정당한 가치체계가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뚜렷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해 방황한다.

양식이나 상식이 갖는 견고한 기반도 쉽게 허물어져 버린다. 마음속 깊이 오랜시일에 걸쳐 침전된 행동과 판단의 기준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같은 흔들림은 주로 기성세대의 문제이다. 젊은 세대는 침전시켜야 할 기준조차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처절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방황과 모색은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두드러진 징후인 것이다.

이같은 분열의 시대와 혼돈의 상황에서는 미사여구로 장식된 허위의식들이 난무할 가능성이 많다. 정신적, 문화적 공백을 메우겠다고 약속하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사상과 낱말들이 여기저기서 홍수처럼 쏟아질 가능성이 짙어진다. 바로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힘찬 도래를 알려주는 신호인 것이다.

미국 사회과학자들은 195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선언했다. 이것이 선언된 후 곧 1960년대에는 청년문화라는 유토피아의 성격을 띤 체제비판적 사상과 행동이 거세게 올라왔다.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선언한 학자들도 오늘의 제삼세계인 개발도상국에서는 해묵은 이데올로기가 계속 판칠 것으로 인정하였다.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고도산업국과 개도국으로 나누어 보지 않고 전 세계의 수준에서 볼때, 오늘의 상황은 자본주의대 사회주의의 갈등에서 고도산업국과 제삼세계간의 갈등, 또는 이른바 국제적인 남과 북간의 갈등으로 변모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이데올로기가 활개칠 장소는 더욱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눈을 국내로 돌리면, 여기 역시 이데올로기가 난무할 여지가 많다. 개발도상국 일반과, 그리고 동남북아시아 지역에서 각국 내에 전보다 이데올로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진 것 같다. 왜 이 가능성이 문제가 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이데올로기의 난무는 곧 허위의식의 난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허위의식 때문에 부당하게 눌리고 억울하게 배고픈 집단들이 속출할 것이고 계속 부당하게 취급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오늘의 비극이 있다. 지식인이 해야 할 최소한의 시대적 사명을 생각하면서 이 시대, 이 상황이 이데올로기를 조장시키는 몇가지 조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P.S 위 글은 한완상 선생의 저서 <지식인과 허위의식>(1993년판 17쪽-18쪽)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