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허위의식.

지식인과 허위의식 조명 7

안데스의꿈 2016. 2. 18. 08:48

3 > 허위의식이 난무하는 구조적 조건들.


현대사회, 특히 신생국에서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난무할 구조적 소지가 많다. 우선 구조적 양극화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도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양극화 및 문화적 양극화가 그 핵심이다.

정치적 양극화란 정치적 강자층과 정치적 약자층이 중간 매개집단의 완충적 견제세력 없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민주적 압력집단이 부재하는 상태이다. 언론. 노동조합. 종교단체. 정당 등이 민주적 견제집단의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약화된 상태이다.

이러한 경우 정치적 강자의 영향력은 권위와 대조되는 권력으로 전락되기 쉽다. 즉 강자층은 그들의 지배의 정당성이 약화되기 때문에 이 정당성을 높일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 필요에 부응해서 여러 가지 아름다운 말로써 장식된 이데올로기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먼저 지배층의 이익이 전체 국민의 규모로 확장된다. 국가이익이라는 말이 현대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게 된다고 지적하는 사회학자들의 입장을 여기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정 지배집단의 이익이 곧 국가사회의 전체 이익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이 같은 등식은 다소 신성시되기 때문에 이 등식에 도전하게 되면 크나큰 값을 치러야 할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국가와 사회가 분리되어본 역사적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신생국에서 정권. 정부. 국가 및 사회가 동일시되는 풍토가 쉽게 형성된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이것들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곧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띤 것임을 나타낸다.

경제적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강자층과 경제적 약자층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중산층과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이권을 민주적 방식으로 대변하고 옹호해 주는 노동조합마저 강자의 시녀로 전락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강자들은 구조적으로 약자를 수탈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반면, 의식화된 약자들은 강자의 힘을 부당한 것으로 비판하게 된다. 이른바 청부(淸富), 깨끗한 부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이 여러 가지 편법적 방법을 동원하여 치부한 졸부로 규탄받게 된다. 이 때 이 규탄을 의식하는 강자층은 자기네들의 행동을 합리화 할 수 있는 구실을 찾게 된다. 여기에 허위의식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이른바 조국 근대화의 기수 또는 민족자본 형성의 주체라는 아름다웅 표현을 차용하기 쉽다. 물론 조국근대화와 민족자본 형성 자체는 대단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구실로 사용하여 자기들의 기존이권을 강화하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약화와 노동자의 저임금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자아내면서도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늘리기 위해 조국근대화와 민족자본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히 허위의식이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경제풍토 속에서는 더욱 이 허위의식이 난무하게 된다.

경제적 강자와 정치적 강자가 상호 결탁되는 상황에서는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약익약 강익강(弱益弱 强益强)의 비극이 심화될 위험이 있다. 경제적 강자는 정치적 강자에게 통치비용의 일부를 제공할 수 있고, 정치적 강자는 경제적 강자에게 치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구조악은 더욱 흉칙해진다. 구조악의 모습이 더욱 흉칙해질수록 강자층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신장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그렇게 강하게 느낄수록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띤 구호나 낱말이 더 아름다운 형식을 빌어 나타나게 된다. 허위의식이 아름다운 탈을 쓰고 춤추게 된다.

문화적인 양극화는 여러 시각에서 살필 수 있다. 먼저 저질 대중문화가 저질의 외래문화와 야합해서 고급문화(또는 순수문화)나 전통문화의 영역을 마구 침식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저질 대중문화의 전파를 통해 여러가지 사회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집단은 문화의 대중화를 문화의 민주화라고 주장하기 쉽다. 대중문화의 저질적 오락성을 조장함으로써 시민의 건전한 비판정신을 흐리게 한다. 여기에 허위의식이 작용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외래문화의 무비판적 수입자와 전파자들은 그것의 보편성을 강조하나, 그 문화의 원산지에서는 그것이 특수문화임을 망각하여 문화적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기 쉽다. 이에 맞서 토착적 문화를 빙자하여 자기 집단의 기득이권을 옹호하려는 자들은 외래문화의 가장 순수한 것, 또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한 부분마저 거부할 뿐 아니라 외래적인 것과 사대주의를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자기들이 받아들이는 외국 것은 주체적이요, 자기 집단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외국 것은 사대주의적인 것으로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데올로기가 날뛸 수 있는 소지가 마련되는 것이다. <계속>


P.S 위 글은 한완상 선생의 저서 <지식인과 허위의식>(1993년판 22쪽-25쪽 13행)의 글입니다.


<3. 허위의식이 난무하는 구조적 조건들>이 좀 길어서 2회로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