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허위의식.

지식인과 허위의식 조명 9

안데스의꿈 2016. 2. 21. 14:06

4> 지식인과 허위의식.


이러한 허위의식을 지식인이 주로 폭로하고 이의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지식인만이 이 같은 일을 전담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지식인 개념의 외연이 문제가 된다. 나는 지식인의 기능을 전통 계승의 보수적 기능과 더불어 더욱 정당한 전통 창조를 위한 비판적 기능으로 크게 나누어 보고 싶다. 물론 지식의 생산, 보급 및 응용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지식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식인의 개념규정 속에서는 지식의 생산,보급 및 응용을 관장하는 제도나 체제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을 찾기 어렵다.

지식인의 보수적 기능과 비판적 기는 중에 어느 것이 강조되어야 하는가는 명백해 진다.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상황일수록 지식인의 비판의식이 크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사는 지식인은 먼저 강자층의 이데올로기가 갖는 허구성을 바로 드러내 주어야 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지식인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 즉 강자층의 허위의식을 의식하고, 그 메카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곧 지식인과 자기의식화를 뜻한다. 이러한 의식화를 거쳐 그 허위의식을 폭로해야 한다. 여기서 지식인의 비판의식은 더욱 날카로와지고 건전해진다. 지식인은 한낱 상황과 역사의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분석자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는 이 역사, 이 상황 속에 살면서 그것을 증언하는 용기 있는 증인이어야 한다. 즉 지식인은 그 시대, 그 상황, 그 구조에 대한 감시 내지 증언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 다음에 이 허위의식을 고치도록 하는 일에 지식인은 노력해야 한다. 지식인의 행동과 참여의 문제가 여기서 대두된다. 과연 이 행동의 반경이 어느 정도 넓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온다. 각박한 정황에서는 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크나큰 행동이 될 수 있다. 쓰는 것이 곧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이데올로기의 생산과정과 그 기능을 이해하고 폭로하고 시정하는 데 힘쓸 뿐 아니라, 만하임이 말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꿈과 분석에도 열을 올려야 한다. 유토피아는 일종의 건설적 대안을 의미한다. 이 유토피아도 우선 인간의 기본권을 높이는 바탕 위에서 꿈꾸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실현 방법에서 비인간화를 촉진하는 방법은 제거해야 한다. 예컨데 폭력적 방법이 바로 비인간화시키는 부당한 방법이다.

우리 상황에서 보면 지식인(지성인을 포함하는)은 별로 많은 선택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기본구조, 특히 강자층에 대한 비판을 쉽게 해낼 수 없다. 우리 지식인의 비판 반경은 상대적으로 말해 대단히 좁다. 그렇다고 해서 좁은 것을 없는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사르트르가 말한 "나쁜 신념"에 빠져 선택적인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믿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지식인은 스스로가 파리한 자화상을 만들게 된다.

나는 한국 지식인이야말로(나 자신을 포함해서) 가장 "몸조심"을 많이 하는 비겁한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반성해 본다. 첫쩨, 허위의식을 보지 못하는 지식인, 둘쩨, 이것을 꿰뚫어볼 정도로 날카롭기는 하나 이것을 드러내지 못하는 무비판적 지식인, 셌쩨, 비록 비판적으로 폭로하기는 하나 이의 시정을 위해 행동하지 못하는 지식인으로 나눌때 이른바 "몸조심"에 열심인 지식인은 주로 두번쩨 경우에 속한다.많은 지식인들이 여기에 속할 듯 하다.

그런데 한국 지식인들 가운데 허위의식을 폭로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자기양심의 압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몇가지 교묘한 방식을 개발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쩨, 모호한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방식으로 글을 엮어 간다.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마저 흐리면서까지 분명하지 않게 표현한다. 이 정도에 이르면 스스로가 허위의식에 빠져버릴 위험이 크다. 그 표현은 강자층이 지닌 허위의식의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모호해진다.

이른바 "안개지수"(眼開識數 : 개그식 표현이라 원문에 한자표기는 없고 제 생각입니다. 옮긴이)가 높은 글을 즐겨 사용한다. <계속>


P.S 위 글은 한완상 선생의 저서 <지식인과 허위의식>(1993년 신판 28쪽-30쪽 1행)까지로 해당 부분(4.지식인과 허위의식)이 좀 길어서 2회로 나눕니다.


위 글은 1976년쯤 기독교방송 교양강좌(라디오)에서 직접 들은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풀어서 강의한 부분들이 있어 위 글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안개지수"라는 표현에서 청중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끝난 뒤 20여초 동안의 박수소리가 아직 귀에 또렷하다.

아직 모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는 형이 듣는 걸 옆에서 같이 듣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끝나고 나서 형에게 어떤 분이냐고 묻자,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해줘서 더 인상 깊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