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허위의식.

지식인과 허위의식 조명 12

안데스의꿈 2016. 2. 24. 14:59

2. 획일주의 사고의 구조.


도끼는 모든 것을 둘로 쪼개는 구실을 한다.그러기에 도끼식사고는 모든 것을 둘로 나누어서 평가하는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분법적 사고는 바로 획일주의와 권위주의의 거울이다.주위의 모든 것을 두 축으로 나누어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이분법적 사고는 바로 획일주의와 권위주의의 거울이다. 주위의 모든 것을 두 축으로 나누어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이분법적 사고는 두 축 사이에 끼는 모든 것을 불순한 것으로 징죄하면서, 사고 주체가 서 있는 축 이외의 모든 것을 경멸하고 저주한다. 그러기에 이것은 가장 원시적인 사고일 뿐더러 많은 사람을 쓸데없이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독선주의적 사고이기도 하다. 세상을 천사와 악마, 백로와 까마귀, 정통과 이단, 애국자와 매국노, 전부와 무(無) 등의 두 축선으로 나누어 놓고서 자신을 한쪽 축에 위치시켜 놓는다. 그렇게 한 후 안심하는 사고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이렇게 양극적인 시각에서 보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이렇게 양극적인 시각에서 보고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모든 획일주의 사고의 핵심이요, 모든 권위주의 사유의 본질인 것이다. 이 같은 사고 양식이 가지는 특성과 이 특성에 내재해 있는 불안한 위험은 과연 무엇인가?

첬쩨, 이것은 현 실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른다. 원래 현실태(reality)란 단순하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의 현실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안으로 끊임없이 분화하는 것이 현대사회라고 한다면, 현대적 현실태는 그렇게 쉽게 양분될 수 없는, 그 자체가 복잡한 현상이다. 물론 이같은 복잡한 현상을 분석적인 시각에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분법적 사고를 권위주의나 획일주의 사고의 핵심으로 볼때, 이것은 분석상의 문제가 아니다. 객관적 분석과 종합적 이해를 위한 방법상의 단순화가 아니라, 자기의 입장과 주장을 강화하여 남 위에 군림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이분화이기 때문에 이것이 위험한 허위의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복잡하게 분화하면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나오는 사회문제들은 결코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 정직한 지성적 태도이다.그런데 이러한 문제 자체의 복잡함과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무시한 체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그 해결 방식마저 간단히 처리해버리는 것은 모든 권위주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이렇게 단순화시키는 것은 사고자가 복잡한 것을 복잡한 대로 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짐짓 그렇게 단순화시킴으로서 그 문제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식의 거짓 해결 방안을 제시하려는 제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동원하고 조종하려는 저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많은 독재자들이 그 나름대로 당대의 복잡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과장해서 제시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1930년대 나치의 단순한 처방에 휘말려들어간 독일인들의 심리를 잘 해부하고 있다. 강자 계층이 이분법적 사고를 강하게 가지게 될 때에는 그것이 약자층을 동원하고 조종하기 위한 "매력적"인 단순화된 처방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면, 즉 권력 역학 관계를 떠나서 단순화시키는 이분법적 사고의 역기능을 살펴보면, 사회부적응이라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렇다. 한 세대가 30년에서 5년 내지 10년으로 단축되고 있는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서 현상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은 사람들은 자연히 복잡하고 빨리 변하는 환경 속에서 낙후하기 쉽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사회현실에 따라가기 어렵고여기에 적응하기 어렵다. 세계와 사물을 보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극단적으로 복잡한 것을 잘못 파악할 뿐 아니라, 복잡하게 움직여나가는 현실구조에 발마출 수 없게 되어 결국 탈락되고 만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같이 낙후되는 인간일 수록 단순화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강자의 유혹에 쉽게 휘말려든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비민주적인 대중운동에 휘말리기 쉽다.(어버이연합이 딱 좋은 본보기죠.옮긴이 생각) 그것이 극우적 파시즘 운동이든 극좌의 공산주의 운동이든 간에 극단적 대중운동에 쉽게 최면 걸리는 비주체적인 존재인 것이다. 오늘의 대중사회를 정치권력의 시각에서 볼때 대중이라는 현대인들은 정치적 자극에 쉽게 휘말려버리는 무력하고 비주체적인 존재이다. 이들은 복잡하고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방황하게 되는데 이러한 단순화된 처방이 아름다운 낱말로 포장되어 제시되면 여기에 쉽게 말려들게 된다. 이렇게 하여 획일주의적 사고에 젖어있는 지배 엘리트에 의해 조종되고 동원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사회의 비극이다.

둘쩨로, 획일주의적 사고는 의견이 다른 자를 차별하는 권위주의적 사고이다. 자기와 다른 생각, 다른 태도, 다른 행동을 단순한 차이로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이 차이를 저주하기 때문에 자연히 차별해위가 뒤따르게 된다. 차이와 차별은 별개의 문제이다. 권위주의자는 차이와 차별간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차이 바로 그것이 차별의 충분한 이유가 되어버린다. "나는 희고 너는 검다. 그러므로 검은 너는 나에게 차별받아 마땅하다" 는 편견이 나온다.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다."라는 것은 성의 차이를 말한다. 그런데 "그러므로 너 여성은 남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차별이다. "나는 게르만민족이고 너는 유대인이다. 그러므로 너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 1930년대 저 나치들의 획일적 사고양식이었다. 이러한 사고가 오늘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미국사회의 KKK단이 흑인 유대인 등 슨스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아닌 인종과 종교를 저주하고 학살하는 것이 그 한 예요, 또한 오늘의 공산권 내에서 비판적 지식인을 극도로 차별하여 이들을 정신병 환자로 취급함이 한 예이다. <계속>


P.S 위 글은 한완상선생의 저서 <지식인과 허위의식>(52쪽 4행-55쪽 2행)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