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바르게 보기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2

안데스의꿈 2016. 1. 20. 12:51

" 버림받은 위대한 예언가 " ..... 뜨거운 조국애로 집필에 몰두.

니콜로 마키아벨리 ( Niccolo Maciavelli, 1469-1527 )의 피렌체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 어느 사회보다 박진감이 넘치고 활기찬 도시였지만, 메디치가문의 복귀와 함께 생명력을 잃고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인문주의자들은 도덕적 공론과 종교적 귀의로 현실을 회피했으며, 공화주의자들은 어설픈 권력론에 고취되어 시민들의 자유마저 위협하는 제왕적인 군주통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이런 시기에 피렌체는 또 하나의 비극을 맞이한다. 바로 마키아벨리가 정치 일선에서 쫓겨나 발언권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찾아온 실직, 음모에 가담했다고 감당해야 했던 억울한 옥살이, 주변의 시기로 가로막힌 복직의 길, 메디치가문에 낙인찍혀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던 관조적 삶, 그리고 1527년 부활 했지만 사보나롤라에게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끝내 그를 거부해버린 공화정까지, 그의 삶은 "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키에르케고르 (Soren Kierkegaard )의 고백마저 사치스럽게 만들 정도다.
그러나 그 어떤 삶의 고단함도 조국 피렌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사랑을 꺽지는 못했다. 시민의 자부심이 강대국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학문과 종교의 사치가 부패와 독재를 부추기며,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그를 <강론 > (Discolsi )과 <군주> ( De Principatibus )를 집필하도록 이끌었다.
이 두편의 저술을 통해, 그는 인문주의자들에게는 고담준론 속에 잠든 " 진정한 정치적 지혜 "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했고, 공화주의자들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시민들을 자유로 무장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반면 마키아벨리의 저작들이 동시대인들로부터 받을 홀대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가 실직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의 주장은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선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인 카사베키아 (Casavecchia )가 그를 " 위대한 예언가 " ( maggiore profeta )치켜세웠듯이, 그의 이야기를 이해할 동시대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유력가문의 자제들이나 귀족들에게 그는 " 다른 생각 " ( contraria professione )을 하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러기에 너무나 혁명적인 " 시민적 삶 " 에 대한 예언을 익숙한 수사의 뒤편에 감추었던 것이다. <계속>

P.S 위 글은 2013년 5월 25일 경향신문 23면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시리즈 첫회의 일부로 필자는 <곽준혁 숭실대 가치와 윤리 연구소장>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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