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문학의 위기론에 대한 짧은 소견

안데스의꿈 2021. 8. 7. 11:50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들은지기 좀 된 것 같다. 나로서는 잘 납득되지 않는 말이다. 

인문학은 인간사회를 인간사회답게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다. 인문학의 소비가 적은 사회는 후진적이고 활력이 없는 사회이며 인문학의 소비가 많은 사회는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사회이다.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 시점에서는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민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공감과 연대이다.>라고 말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유는 그가 그 말을 할때의 우리 사회와 지금의 이 사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깨지 못했던 기층민중이 대거 깨어있는 시민으로 편입되면서 시민층의 대폭적 확충이 이루어졌고 그 비중이 약 40%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시민의 대중화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깨지 못했던 기층민중은 어떻게 깬 시민이 되었는가?

그것은 당연히 우리가 모두 알고있는 정치사회적 계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계기만으로 충분한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기층민중과 우리의 기층민중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할 것이다. 민중은 계기만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인문학의 소비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인문학의 소비가 활발한 민중은 깨어있지 못하더라도 특정한 계기에 따라 깨어있는 시민이 될 수 있다. 인문학의 소비는 <직접소비>와<간접소비>로 구분 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것까지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뭏든 인문학이 직,간접적으로 활발히 소비되는 사회는 <시민적 교양>을 고양하고 이것이 특정한 계기를 맞아 광범위한 대중의 <공감과 연대>를 형성한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인문학은 사회진화의 근본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인문학의 수요가 많은 사회라고 본다. 현재 이 사회의 역동성이 그 간접증거일 수 있다.

 

결국 우리사회는 인문학의 소비가 활발한 사회이다. 소비가 활발한데 왜 위기인가? 아마도 그 이유는 인문학의 생산과 소비가 셍산-유통-소비라는 일관체계를 갖지 못하고 유리되어 있는 탓으로 보여진다.

인문학의 생산은 대학-학회-학술지라는 극히 한정된 체계에 갇혀있다. 즉 인문학 생산자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민(수요자)은 각개약진의 방식으로 인문학을 소비한다. 양쪽은 구조적으로는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관계지만 그들 사이에 정상적인 유통경로가 없다. 이것이 이른바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결국 인문학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양한 경로로 <관계>를 형성하는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즉 인문학자들이 대학이 아니면 밥을 굶개 되어있는 이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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