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형을 추억하다(8)

안데스의꿈 2022. 3. 15. 23:46

19. 바둑

형의 바둑실력은 기원급수로 4~5급정도다. 10대 후반에 그 실력에 도달한 후에는 바둑을 자주 두지 않아 평생 그 수준을 유지했다. 나와는 실력이 비슷할때까지는 종종 대국을 했으나 내가 고수가 된 뒤부터는 대국을 잘 안하게 되었다. 8~90년대에 수유리에 가면 형이 가끔 대국을 청해서 몇점 접바둑으로 몇차례 대국을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대국을 안하게 되었다. 나는 형이 학문에 전념하면서 바둑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얼마 전 형의 글에서, 연구하다가 휴식할때 바둑TV를 시청했다는 언급을 보고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중급의 애기가가 바둑에 흥미를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도 무심했던 것이다. 나는 고수가 된 뒤에는 점차 바둑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더구나 형과의 대국은 내가 상수가 되면서부터 점차 이기겠다는 투지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것은 대국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형과의 접바둑에서는 승패가 어떻든 나의 대마가 위기에 몰리는 일이 전혀 없고 그렇다고 내가 형의 대마를 잡은 일도 없었다. 밋밋하게 집바둑으로 진행되다가 계가바둑으로 흘러 작은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승부의 긴장이 없는 대국이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시점부터 형은 나에게 대국신청은 물론 바둑과 관련된 이야기도 잘 안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후회되는 일이다. 형과 바둑에 대한 최근(?)의 대화내용을 대략적으로 소개한다. 2016년 경의 추석날 금산사에서였다.

우리 3형제가 다 있는 자리였다.

<문> : 이창호와 이세돌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나?

<답> : 서로 전혀 다른 재능이라 직접비교는 좀 어려움이 있고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수는 있음.

이창호는 끝내기도 바둑승부의 주요변수임을 증명했음. 이창호 이전에는 끝내기는 승부에서 종속변수로 취급되었음.

따라서 이창호 이전의 선배기사들은 끝내기를 종속변수로 간주하고 바둑수련을 했기때문에 끝내기가 승부의 주요변수임을 발견하고 수련한 이창호에게 질 수밖에 없음. 단 이창호의 후배들은 모두 끝내기를 승부의 주요변수로 보고 수련하므로 이창호가 앞으로도 계속 초일류기사로 자리하기는 어려울 것임.

이세돌은 천부의 수읽기 능력을 바탕으로 한 최적의 전투적 실리바둑을 구사하는데 그와 비슷한 바둑이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임. 즉 상대에게 치명상을 줄 한방을 노리는 경향이 강한데 그런 스타일의 바둑은 대국도중 조금만 수읽기 차질이 있어도 회복불능의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으므로 승률이 저조해야 함에도 새계 최강에 오른 것을 보면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고 할 수밖에 없음. 무협용어로 표현한다면 이세돌의 바둑은 마도무공이라고 할 수 있음. 결국 이세돌이 더 훌륭한 기사는 아니지만 재능만을 본다면 이세돌이 더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음.

 

이상이 최근에 바둑에 관한 형과의 대화 요약이다. 나의 말을 진지하게 듣던 형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바둑으로 형과 작으나마 즐거운 시간을 별로 갖지 못한 것이 앞으로도 계속 안타까울 것 같다.